직원 50명으로 年매출 150억원, 등산화 회사 잠발란의 생존 비결

 

3년6개월의 ‘도제식 교육’
오래 일한 직원들의 경험… 회사 최고 資産으로 여겨
“이렇게 體得된 지식은… 대기업도 쉽게 모방 못해”

 


“質만 생각해야 발전 가능”
수작업과 결과 똑같을 때만… 기계 사용해 작업 진행
“수요 맞추려 물량 늘리면… 소비자들은 금방 눈치채죠”

 

 

이탈리아 북부 도시 밀라노를 떠나 서쪽으로 달리는 동안 굽이치는 푸른 산과 만년설 덮인 봉우리가 보였다. 이 산맥의 이름은 돌로미테. 알프스 산맥의 일부인데 3000m 넘는 봉우리 18개와 빙하 41개를 품고 있다. 3시간쯤 달렸을까. 산맥 바로 밑의 작은 시골 마을 스키오에 도착했다.

지난 5일 이 마을에선 이탈리아의 수제 가죽 등산화 회사 ‘잠발란’의 창립 85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창업자인 주세페 잠발란이 1929년 이 마을에 연 조그만 신발 수선 가게가 이 회사의 시작. 이젠 등산화를 연평균 약 15만켤레씩 40여개국에 수출하는 연 매출 150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행사에 참석한 28개국 기자와 아웃도어 용품 관계자들을 맞은 이는 창립자의 손자이자 3대 사장인 마르코 잠발란(44). 카고바지(양옆에 덮개가 달린 호주머니가 있는 바지)에 점퍼를 입은 등산객 차림이라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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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에게 등산은 취미이자 생활이며 일이다. 그는 “내가 태어난 이곳에서 30분만 가면 돌로미테의 초입이다. 어렸을 때부터 등산을 즐겼고 등산화를 만들기 시작한 후엔 더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접 만든 등산화를 테스트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토요일까지는 등산화를 만들고, 일요일엔 그 등산화를 신고 산에 가서 점검한다. 2대 사장이던 그의 아버지 에밀리오 잠발란(71)과 여동생 마리아 잠발란(42·마케팅 총괄)도 마찬가지다.

잠발란 가문의 산 사랑은 창업자 주세페 때부터 시작됐다. 주세페는 주말마다 자신이 만든 등산화를 신고 산에 다녀온 뒤 불편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마르코는 “할아버지의 산 사랑은 워낙 절절해서 더 좋은 등산화를 만들어 산을 구석구석 탐험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주세페는 등산화를 끊임없이 개선했다. 당시의 등산화는 가죽 밑창이 달린 형태라 눈이나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거친 땅에선 순식간에 닳았다. 고민 끝에 그는 가죽 밑창에 쇠징을 박은 등산화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한 켤레의 무게가 3㎏에 달했고 쇠징을 박느라 생긴 구멍으로 물이 스며들어서다. 결국 등산을 같이 다녔던 친구 비탈레 브라마니와 함께 연구한 끝에 당시엔 신소재였던 고무로 밑창을 만들었다. 고무 밑창을 덧댄 세계 최초의 등산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등산화들은 지금도 회사 내 진열장에 보관돼 있다.

잠발란 직원 50여 명 중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40여명. 이들은 대부분 고졸 이하다. 마르코는 “공장 직원으로 채용되면 우선 선임자로부터 3년 6개월간 일대일 도제(徒弟)식 교육을 받으며 일한다”며 “이 과정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혼자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만난 직원 피오 리첸초(65)는 한 기계를 가리키며 “조작법을 배우는 데는 한 달 정도가 걸리지만, 숙련공이 되려면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걸린다”고 했다. 잠발란에서 50년 가까이 일한 그가 소개한 것은 ‘노르웨지안 웰티드(Norwegian Welted)’ 방식이라 불리는 이중 박음질을 하는 데 쓰이는 기계였다. 공정이 까다롭고 실패하는 경우도 빈번해 최근엔 수제화 생산자들도 잘 쓰지 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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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잠발란 사장은 16세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는 “지금도 등산화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마르코는 “현재 수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라며 “할아버지 시절엔 거의 100% 수작업이었지만 현재는 기계로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기계화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남은 부분도 기계화하고 회사 규모를 키우면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마르코는 “우리는 양(量)을 맞추기 위해 등산화를 만들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 순간 소비자들은 그 사실을 금방 눈치채게 되고, 그러면 잠발란은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르코는 “질(質)에 초점을 맞춰 ‘메이드 인 이탈리아’ 명품을 만드는 것만이 우리가 생존하고 발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잠발란에 오래 근무한 직원의 경험과 숙련된 기술이 회사의 중요한 자원으로 존중받는다.

이탈리아엔 잠발란과 같은 강소기업이 많다. 앞서 언급한 주세페의 친구 비탈레가 1937년 세운 신발 밑창 제조 회사 ‘비브람’도 그 예다. 잠발란처럼 3대째 이어온 가족기업인 비브람은 현재 140여명이 일하고 있는데, 밑창 분야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외교관이자 학자로서 20여년간 이탈리아에서 산 김경석 주교황청 대사는 지난 3월 펴낸 책 ‘메이드 인 이탈리아’에서 “여러 약점에도 이탈리아 경제가 끄떡없는 것은 바로 개미군단과 같은 중소기업의 힘”이라고 평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근 교수는 이탈리아 강소기업들의 생존 비결을 오랜 세월 축적된 ‘암묵지(暗默知)’에서 찾는다. 암묵지란 학습과 경험을 통해 체득돼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뜻한다. 이 교수는 “형식지(形式知·문서화 혹은 수치화돼 외부로 표출되는 지식)와 달리 암묵지는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